그래비티 G r a v i t y
간략히 감상(?) 적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제 관점에서 보시게 될지 모르니 패스하세요.
더군다나 머릿속으로 재생하고 정리해서 써야 하는데 그냥 보면서 느꼈던 단상을 적는 것이니 지극히 주관적이고 헛발질이고 난문입니다. (특히 어휘).
영화를 보기 전에 예고편이나 시놉시스, 평점, 리뷰 등을 전혀 안 봤어요. 제가 본 방식대로 본 사람들을 발견하는 게 적잖은
재미이기도 할 테구요, 또 사실 영화 줄거리만 읊는 사람들 외에 속살(중의重義) 보는 습관이 든 사람들은 바로 떠오를 만한
류의 평범한 관점일 듯 하네요. 어쨌거나 일단, '날것'의 느낌만 적어 두고, 차츰차츰 다듬을까 해요.
그래비티를 보고 싶어진 이유는 독이님의 '강추'와 더불어 제가 사랑하옵는 '연희동 한쌤(국민TV 문희정의 끌림)'의 추천이었습니다.
'스포' 당할까 싶어 스킵해가며 들었긴 했어도 감상의 방향 역시 한쌤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스탠리 큐브릭이 뼈다귀를 우주로 던져서 인류문명의 발전을 단숨에 보여줬다면, 알폰소 쿠아론은 그 뼈다귀를 지구로 되던져
인간생명의 탄생을 보여줬어요.
정자가 난자로 착상하는 여정을 인간이 험한 바다를 유영하는 시각으로 그려놓은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밤바다 여행(Night-sea Journey, John Barth)'도 떠올랐습니다.
자신과 우주선을 연결한 안전선은 탯줄을 연상시켰습니다. 산소가 떨어진 채 우주의 미아가 되었다가 간신히 우주선으로
들어왔을 때 둥그런 문을 배경으로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이 몸을 웅크리며 잠에 빠지던 모습은 바로 태아였죠.
무섭게 몰아치던 러시아 위성의 파편은 세차게 질내로 들어온 정액이라고까지 생각한 건 과장일까요.
숨소리와 통신음만 들리는 평화롭던 우주에서 발 아래 보이는 아름다운 지구에 감탄하고 농담을 하던 중 파편폭풍이 덮치는
순간부터 우주 미아로서 기나긴 유영을 시작하잖아요.
과정의 시간순은 별개로, 이후 라이언 스톤이 겪는 온갖 역경은 착상 이후 탄생을 앞두며 치르는 정자 혹은 태아의 공포죠.
불에 데인 듯 뜨겁거나 낙하산이 걸려 더뎌지거나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적이어서 포기하고 싶어하는 둥.
천신만고 끝에 추진력도 얻고, 개체를 분리하고, 기다란 꼬리를 달며 지구로 향하는 위성의 파편과 구조선은 다시 난자로
향하는 정자의 모습처럼 보였어요. 대기권을 뚫고 지구에 닿자 쏟아져 들어오는 건 또 '양수'라 할 수 있는 물이잖습니까.
크게 인간의 탄생 과정이면서, 라이언 스톤의 재탄생을 시각화 한 것이기도 하겠어요.
딸이 죽은 후로 딱히 좋아하는 일 없이, 일을 마치고 저녁이면 사회자 멘트는 없이 노래만 나오는 라디오 채널을 골라 틀고
멍하니 드라이브 하는 게 일상이던... 지구에서의 라이언 스톤의 일상을 우주에서 재연하죠.
우리는 모두 라이언 스톤이에요.
더이상 아무런 고민도 갈등도 없이 좁은 무중력의 공간에서 모든 걸 쉽게 포기하거나, 언제든 죽는다는 걸 받아들이고
지면에 발을 단단히 붙여 자신의 모험담을 만들거나, 결정해야죠.
지구에 발을 붙이게 된 라이언 스톤의 삶은 전에 살던 것과 많이 달라지겠지요.
여성 버젼의 '127시간(대니 보일 감독)'입니다.
(일단 여기까지).